어릴 적, 무심히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저 슬프고 다소 부당한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 한 아이의 아버지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여전히 부모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지금, 이 책은 전혀 새로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책장을 다시 넘기며 나는 나무의 자리에 선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고, 또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을 아낌없이 주어왔는지, 그리고 남은 인생의 후반전에는 무엇을 더 내어놓아야 하는지를. 이제야 이 짧은 그림책의 진짜 메시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헌신: 주는 것의 의미를 다시 배우다
소년이 자라며 필요할 때만 나무를 찾아오듯, 나도 내 부모님께 늘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엔 부모님의 존재가 너무 당연했습니다. 마치 언제든 기대면 기꺼이 품어줄 든든한 그루터기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이 분주해지고, 아이가 태어나고, 내 가정이 생기면서 부모님이 내게 해주셨던 헌신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저 한 번의 사과나 한 줌의 가지가 아니라, 평생에 걸친 끝없는 나눔이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마음에 깊이 박힙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던 대목은, 소년이 마지막에 돌아와 "앉을 곳이 필요하다"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무는 주저 없이 "이제는 내 그루터기에 앉아 쉬어"라고 합니다. 그 장면에서 나는 부모님이 나를 키우며 모든 것을 다 주고, 그리고도 더 주고 싶어 하시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제는 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자각도 들었습니다. 헌신이란 거창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꺼이 내 시간을 내어주고, 마음을 열어주고, 필요한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무조건적 사랑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어른이 되어 읽으면 소년에게 쉽게 분노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이의 필요와 탐욕도 결국 성장의 한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아내에게, 아이에게 필요할 때만 다가갔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특히 중년이 되어 내 일과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종종 효율과 필요로만 이루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계산과 보상이 아닌, 그 자체로 기쁨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랑의 방식이 조금씩 마음에 스며듭니다. 때로는 아이가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다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입니다. 나무처럼 묵묵히 기다리고, 필요할 때마다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에서 배우는 가족에 대한 가장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무조건적 사랑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의 가장 순전한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후회: 내 지난 삶의 부족함을 마주 보다
책장을 덮으며 지난 오십 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나무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는지, 혹은 늘 무언가를 되돌려 받기 위해 주었던 건 아니었는지. 이제 와서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도, 부모님이 힘들어하실 때도, 나는 내 일과 내 삶이 더 중요하다는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이 어느새 후반전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더 얻어야 할까"보다 "어떻게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에게 남은 시간과 에너지, 사랑을 가족과 이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지치고, 모든 것을 다 주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결론: 이제는 '주는 삶'으로 살아가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다시 읽으며 마음속에 하나의 결심이 생겼습니다. 이제 내 인생의 후반전만큼은, 주는 삶으로 살고 싶다는 결심입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무처럼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내게 먼저 주셨던 무조건적 사랑을 내 삶으로 옮겨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내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아빠를 떠올릴 때,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 소망이 내 인생 후반전의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