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목회자가 되고 싶었다. 단순히 종교적 이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 안에서 치유와 위로를 전하며 사는 삶이 내게 가장 가치 있고 숭고한 소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현실적인 무게 앞에 주저앉은 나는 결국 신학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렇게 내 안에 품고 있던 부르심은 한동안 잊힌 꿈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집착했던 목회자의 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 전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그 깨달음을 새삼 되새기게 해 준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꿈을 찾아가는 소년의 모험담으로 읽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믿음과 성장, 그리고 성찰의 여정을 떠올리게 하는 은유로 다가왔다.
용기: 내 안의 전설을 부르다
어린 시절 내게 교회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매주 예배당에 앉아 말씀을 듣고, 찬송가를 부르며 느꼈던 평안과 희망은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목회자가 되어 그 감동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 꿈은 내 안에서 하나의 ‘전설’처럼 빛났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경제적 불안과 가족의 기대, 내 안에 스스로 품었던 두려움이 한데 엉켜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그 선택이 ‘패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연금술사”의 산티아고처럼, 나는 내 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잠시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산티아고가 반복되는 꿈에 이끌려 여정을 떠났듯, 나 역시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부르심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삶의 어떤 시점에 다시 그 부르심이 깨어나 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두렵기보다는 위로처럼 느껴진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반드시 직업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다시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성숙: 여정 속에서 발견한 믿음의 훈련
산티아고가 사막과 유리 가게를 거치며 수많은 실패와 만남을 경험했듯, 내 삶에도 예상치 못한 우회로가 가득했다. 서른 즈음, 더 이상 교회와 깊이 연결되지 못하던 시기에 나는 내 믿음이 식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오히려 내 신앙이 ‘어린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단번에 완성시키지 않으신다.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고통과 실패, 일상의 반복과 관계의 단절 같은 여러 훈련을 통해 천천히 단련시키신다. “연금술사”에서 연금술사가 산티아고에게 말한다. “진정한 연금술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말은 내게 깊이 와닿았다. 목회를 포기했다고 해서 믿음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내 안에서 더 조용하고 묵직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성실과 정직을 쌓아가는 것 자체가 사역이라는 깨달음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다.
보물: 결국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
산티아고의 여정이 피라미드에서 허무하게 끝나는 듯 보였을 때, 나는 그 장면에서 이상하리만큼 큰 위로를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목회자라는 자리가, 꼭 내가 서야 할 유일한 장소라고 믿었기에 포기한 순간 오랫동안 죄책감과 후회를 안고 살았다. 하지만 보물은 결국 그가 출발했던 고향 교회에 있었다. 이것은 곧 내게 주어진 영적 교훈이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멀리서 찾으려 했던 사명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사실은 이미 내 안에, 내 삶의 시작점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 돌아보니, 천국과 지옥은 어떤 종교적 개념 이전에 결국 ‘내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는 스스로 천국에 머물거나, 스스로 지옥에 나를 가둘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매일의 순간을 진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용기였다. 보물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이미 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결론: 도전, 매일의 삶에서 순종하기
“연금술사”를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은, 결국 내가 어린 시절부터 붙잡아 왔던 부르심의 본질이었다.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들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자리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가장 깊은 일을 이루신다. 이제는 목회자의 길이 아니어도 좋다. 강단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동료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가면 된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도전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이 하루를 감사와 기도로 채운다면, 그것이 곧 내가 찾던 천국이며 보물이다. 더 이상 다른 삶을 꿈꾸지 않는다. 지금 내 삶 속에 이미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와 부르심이 있음을 믿으며, 오늘도 조용히 그분의 음성을 좇아 나의 작은 전설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