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를 읽으면서, 단순히 누군가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조민이 써 내려간 문장들은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스며들었다. 나 역시 정치인의 아들로 자라며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고, 내 이름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들이 문득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회피해 온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내 목소리로 살아가고 있는가?”
시선: 타인의 시선 속에 살아야 했던 아이
조민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말한 ‘견딘다’는 표현이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늘 누군가의 아들로 규정되었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들은 내 성적이나 태도를 평가하기 전에, 아버지가 지역구에서 어떤 입지를 다졌는지를 먼저 이야기했다. 친구 부모님들은 가끔 은근슬쩍 “아버지 덕분에 학교에 좋은 일이 많다”는 식의 말을 건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잘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표 덕에 얻는 평가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조민이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라고 쓴 대목을 읽을 때, 내 가슴도 묘하게 저릿해졌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만으로 어떤 자리에 선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반장, 학생회장 같은 역할을 맡아야 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리더를 해야지, 정치인의 자식인데”라고 쉽게 말했지만, 사실 그 역할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조용히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었는데, 늘 ‘모범적인 리더’라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다.
조민이 언론의 시선에 갇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판단받았듯, 나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해명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이 정책을 왜 추진했냐”는 질문을 친구들로부터 듣기도 했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때마다 말하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비난이 돌아오고, 말을 하면 아버지를 공격하는 것이 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 책은 그런 모순된 상황에서 어떻게 견디고 버텨왔는지, 한 개인의 목소리로 적어 내려간 기록이었다. 그 점이 내 오랜 기억들을 자꾸 소환했다.
강박: 나는 늘 모범적이어야 했다
조민의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침묵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었다”는 문장이다. 그것은 내 삶에도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릴 적부터 “정치인의 자식은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면, 곧바로 아버지의 이미지에 흠이 간다는 우려가 따라붙었다.
교회에서는 늘 예배 시간 맨 앞자리에 앉아야 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대표 기도를 하거나 봉사를 도맡아야 했다. 다른 아이들은 장난치며 뛰어놀 때도, 나는 언제나 조용하고 깔끔하게, 리더답게 행동해야 했다. 그런 강박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조민이 말한 “다시 걷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회복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억눌러온 강박과 타인의 기대를 떨쳐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한 것은 그 점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나답게’ 있어본 적이 없었다. 늘 어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나를 맞추려 애썼다. 어릴 때는 그것이 책임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 타인이 짜놓은 각본이었다.
이 책은 내가 잊고 살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살면, 결국 나는 어디에 있나?” 지금까지 내 정체성은 가족과 주변 기대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껍질을 벗어나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조민의 기록이 가만히 일깨워주었다.
용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조민이 책을 통해 드러낸 가장 큰 용기는, 부정적 여론과 조롱 속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침묵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받을 일도, 상처 입을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그 침묵은 편안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나는 내 목소리로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돌아올 시선이 무서워서 주저했다. 결국 조민이 선택한 방식은 ‘글쓰기’였다. 그 방식이야말로 누군가에게 해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용기의 표현이었다.
책 속의 문장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견디고, 다시 걷고, 멈추지 않는다”는 말들은 매우 소박했다. 그러나 그 담백함이 오히려 더 힘이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조민이 이제 유튜브에 나오고 인터뷰를 하며 여전히 공격을 받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모습은, 나에게도 작은 용기를 주었다. 그동안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말해도 되지 않을까. “나도 내 이름으로 살아도 된다”는 문장을, 내 삶에도 붙여보고 싶었다.
결론: 이제부터라도 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네가 네 이름으로 살 차례가 아니냐?” 사실 아직도 두렵다. 주변에서 여전히 아버지의 이름과 나를 분리해 보지 못한다. 그러나 조민이 보여준 과정은 완성형이 아니었다. 흔들리고, 주저하며, 그래도 나아가는 기록이었다.
나에게 남은 도전은 바로 이것이다. 더 이상 주변의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는 것.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어떤 목소리로 세상과 대화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나도 괜찮다”는 위로였다. 조민이 자기 목소리를 찾아간 여정은, 같은 무게의 삶을 살아온 나에게도 충분히 울림이 있었다. 이제는 나 또한 내 이름으로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글처럼,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의 경험을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