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 섰던 그 시기, 우리 삶 속의 가장 작고 소박한 공간에서 시작된 회복과 변화의 이야기다. 서울 동네 골목 어귀에 있는 평범한 편의점. 그곳에 한 노숙인이 직원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은 거창한 사건 없이, 조용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그린다. 나는 50대 중년 독자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새삼 느꼈다.
1. 등장인물에 나를 투영하다 – 평범함 속의 특별함
주인공 ‘독고’는 과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정체성은 모호하고, 말투도 어눌하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영향을 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사람을 바꾸는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나는 독고의 모습에서 어쩌면 나 자신을 보았다. 가족에게, 직장 동료에게, 교회 공동체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충실히 살아가는 그의 태도는 신앙인이 지녀야 할 섬김의 자세와도 닮아 있었다.
2. 불편함이 관계를 만든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불편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처음엔 서로 어색하고, 불편하며, 때론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불편함은 점점 ‘이해’와 ‘공감’으로 변한다.
이 구조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도 같다. 가족, 교회, 직장에서의 관계는 대부분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 그 불편함을 껴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동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아주 조용히 이야기해 준다.
3. 일상이 회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불편한 편의점』은 거창한 회개의 순간이나 기적 같은 변화 대신, 작은 일상의 반복이 어떻게 사람을 회복시키는가를 보여준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 물건을 정리하는 것, 손님을 맞이하는 것— 이 단순한 행위들이 독고를 바꾸고, 주변 사람들을 바꾼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감사노트를 쓰는 반복. 처음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그 꾸준함이 결국 내 삶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간다. 회복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깊이 와닿았다.
4. 중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 책의 의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중년’이라는 인생의 시기를 돌아보았다. 가장 활발했던 청년기를 지나, 책임과 피로, 회의와 회복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어려운 시기.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사실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일 수 있다.”
독고가 과거를 묻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은 내게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회복하는 첫 번째 걸음이 아닐까.
5. 공동체가 우리를 바꾼다 – 신앙적 관점에서
이 책에서 편의점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다. 그곳은 작은 공동체이며, 회복의 통로다. 신앙 안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교회도, 가정도, 내 삶의 작은 공간들이 결국 나를 바꾸는 곳이라는 사실. 그 공간이 불편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믿음이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었다.
『불편한 편의점』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삶의 진리와 신앙의 통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라. 이 책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6. 마무리하며 – 변화는 오늘 하루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했다. 오늘 하루,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충실히 살아보자. 누군가의 편의점 같은 존재가 되어보자. 말은 많지 않더라도, 내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불편한 편의점』은 따뜻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중년의 나에게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방향을 선물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