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년 동안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왔다. 교회는 늘 내 삶의 일부였고, 신앙서적도 자주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로역정」은 늘 조금 따분한 고전일 뿐이었다. 교회 도서관에 오래도록 꽂혀 있는 낡은 책, 몇 번 시도하다 덮어버린 이야기. 그랬던 책이 내게 새롭게 다가온 것은 불과 몇 해 전, 고 하용조 목사님의 천로역정 시리즈 설교를 듣고 나서였다. 말씀 속에 담긴 주석과 해설을 따라가면서, 그저 상징적인 우화라고만 여기던 이야기가 내 삶의 거울처럼 느껴졌다. 이제 쉰 살이 된 나는, 크리스천이 지나야 했던 수많은 여정을 묵상하며 내 믿음의 걸음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지금 이 긴 여정의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어떤 마음으로 다음 걸음을 내디뎌야 할까를 자주 생각한다.
선입견: 따분함 속에 묻혀 있던 보물 같은 이야기
처음 「천로역정」을 접했을 때, 나는 솔직히 별 기대가 없었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기독교 고전의 상징”이라는 말이 그저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교훈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교회학교에서 한두 장면만 훑어보았을 뿐, 끝까지 읽어본 적도 없었다. 내 신앙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청년 시절에는 신앙의 열정보다는 세상적인 일들에 더 마음이 쏠려 있었다. 결혼과 사업,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 쉴 틈 없이 달려온 삶 속에서 신앙서적은 늘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 숙제”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쉰 살에 접어들면서, 그 따분했던 이야기들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듣게 됐는데, “허영의 시장”과 “절망의 수렁”에 대한 해설이 유난히 마음에 박혔다. 세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실패와 무력감이, 단순한 시련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야 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설명이 귀에 들어왔다. 내 오랜 선입견이 조금씩 깨졌다. 다시 책장을 열어 본 천로역정은 더 이상 낯설고 지루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삶의 무게와 애환,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불안이 놀랍도록 정직하게 담겨 있었다.
공감: 여정 속에서 마주친 나의 절망의 수렁
「천로역정」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은 바로 절망의 수렁이었다. 크리스천이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나는 자꾸만 내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내가 겪었던 우울과 불안, 신앙적 회의가 고스란히 그 수렁에 겹쳐 보였다. 특히 중년이 된 지금,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사업이 예상치 못하게 어려워지고, 부모님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던 시기에는 매일같이 마음이 가라앉았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했고, 신앙의 여정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하용조 목사님은 설교에서 “수렁은 단지 넘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일어나야 할 자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오랫동안 귀에 남았다. 내 삶에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도, 어쩌면 하나님이 나를 다시 일으키려 하시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천로역정」을 읽고 나서야, 내 고난이 결코 의미 없는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그때의 상처가 다 낫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절망 속에 주저앉을 때마다, 크리스천이 수렁에서 몸부림치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다시 걸음을 떼라”는 조용한 부르심을 느낀다.
자각: 허영의 시장을 지나며 깨달은 것
나이가 들수록 허영의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이었다. 젊을 땐 성공을 갈망했고, 중년이 된 지금은 체면과 안정에 매달렸다. 크리스천이 허영의 시장을 통과할 때,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배척했다. 세상의 가치와 신앙의 길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을 읽을 때, 내 삶에도 숱한 허영의 시장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좋은 직함과 재정적 안정, 자녀의 성공과 주변의 인정. 그것들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어느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에서 허영의 시장은 ‘삶의 목적이 흔들리는 지점’이라고 설명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느새 삶의 본질보다 포장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천로역정」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이 책은 단순히 신앙적인 우화를 넘어, 나 자신을 마주하는 거울이 되었다. 어쩌면 내가 쉰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허영의 시장을 지나며 느낀 공허함은, 더 단단한 믿음을 붙잡으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결론: 끝까지 걷고 싶은 길에 대한 결심, 그리고 도전!
이제 나는 「천로역정」을 단순한 고전으로만 두고 싶지 않다. 그저 오래된 종교 이야기로 치부하던 시간이 부끄럽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처럼,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넘어짐이 따른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도 분명 고난과 질문의 연속일 것이다. 쉰 살의 나는, 이제야 믿음의 여정이 끝이 아니라 과정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때론 한숨도 쉰다. 하지만 절망의 수렁을 통과한 '크리스천'처럼, 나 역시 이 길을 끝까지 걷고 싶다. 그 길의 끝에서, 지금보다 더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조용히 다짐해 본다. 주저앉지 않겠다고, 허영의 시장을 지나서도 나아가겠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내 고난이 모두 의미로 바뀔 날이 올 것이라 믿어본다.